위염과 신경성 위장병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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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오후, 인상이 다소 어두워보이는 아주머니 한분이 진료실을 찾아 오셨습니다.

“ 지가 수년전부터 속앓이가 있는디유… 늘 명치 끝에 뭐가 매달린 것 같구만유… 가끔은 쏙(속)도 쓰리구… 게다가 밥만 먹으면, 왜 그리도 잠이 쏟아지는지… 가스도 많이 차는 편이구만유…”
“ 오랫동안 고생하신 것 같은데, 검사는 받아보셨나요?”
“ 그라믄유… 작년 이맘때 내시경 검사도 받고, 위장조영인가 뭔가 하는 검사도 몇 번 받아 보았는디… 위염이 있다더군만유…신경성이라나 뭐라나…약도 꽤나 먹었는디 먹을 때 뿐이더라구유…”

정상 위내시경 소견
이미지출처 : commons.wikimedia.org

 

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위염이 있데요… 어쩌죠?

사실, ‘위염’이라는 말처럼 혼란스러운 말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배탈이 나도 ‘위염’이라고 하고, 아무 증상이 없이 멀쩡하던 분도 내시경 검사를 받으면, 위축성위염, 비후성위염, 표재성 위염, 미란성 위혐 등의 진단이 나오기도 합니다.

급성과 만성위염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도데체 위염이라는 병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를 정의하는 것 조차 쉽지가 않습니다. 간략히 정리를 하자면, 구토를 하거나 설사를 하고, 속이 쓰린 상태도 임상적인 ‘급성 위염’이라고 할 수 있고, 내시경 검사상 위점막의 모양을 보고도 여러 가지 ‘위염’ 이라는 병명을 붙이는 것입니다.

나이가 30이 넘으신 분이라면, 위점막이 어린아이처럼 깨끗한 분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자극적인 음식이나 과음, 흡연 등의 영향으로 성인이라면, 어느 정도는 다 내시경적인 ‘위염’의 소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병변이 매우 심각해 보여서 적극적인 치료를 요하는 위염도 있지만, 속쓰림이나 더부룩한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단지 위장의 노화현상인 위염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내시경 검사를 하는 의사의 입장에서보면, 별로 심하지 않은 위염소견이라도 일단 환자에게는 언급을 하는 것이, 치료를 위한 의사-환자 관계를 부드럽게 하기 때문에 ‘신경성 위염’등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내시경 검사후 ‘완전히 정상’이라고 말하고 약을 먹으라고 권하는 것은 아무래도 환자를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거든요.

 

내시경과 위장조영 검사가 있다던데요…

내시경이란 어린애 손가락 굵기 만한 줄의 끝에 광섬유로 된 눈(렌즈)이 달려 있어서 식도부터 위, 십이지장까지를 직접 보는 것이라서, 매우 확실한 방법입니다. 만일 의심스러운 병변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조직검사를 할 수도 있지요. 단점이라면, 검사 자체가 매우 역겹고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위장 조영검사는 위벽을 코팅하는 물약을 마시고, X-선으로 코팅된 위벽을 보는 간접적인 검사법입니다. 내시경에 비하여 비교적 수월하고, 전체적인 모양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양성과 악성 종양을 구별한다거나, 미세한 병변의 확인에는 아무래도 불리하지요.

만일 나이가 40이 넘으셨거나 체중감소, 혈변과 같은 심각한 증상이 동반된다면, 우선 내시경을 하는 것이 좋겠고, 단순히 기능성 위장장애를 확인하려는 분이거나 젊은 분이라면, 위투시도 권장할 만 합니다. 요즘은 수면내시경이 보편화되어 전혀 불편감없이 내시경 검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만, 비용이 좀 더 든다는 면만 감수하신다면요…

 

신경성 위장병란 어떤 병인가요?

‘신경성 위장병’은 정식 병명은 아닙니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기능성 위장장애’라는 알 듯 모를 듯한 이름으로 불리는 병을 환자들이 듣기 편하게 바꾸어 부르는 것이지요. ‘기능성’ 이라는 말은 영어로 ‘functional’이라고 하는 말을 번역한 것인데, 쉽게 말하면, 겉으로는 멀쩡한데, 제 구실을 못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같은 병변을 내시경으로 관찰하면, 의사가 아닌 사람이 보더라도 ‘뭔가 이상이 있기는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가시적인 병변이 나타납니다. 위암이나 식도염 등도 눈으로 보면, 암덩어리가 보이거나, 식도가 빨갛게 부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요. 이러한 병들은 ‘기능성’이라는 말 대신에 ‘기질적(organic)인 병’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기능성 위장장애를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하나요?

의사들은 환자의 증상을 듣고, 진찰을 해서 이것이 위장의 증상인지, 혹은 심장이나 폐, 혹은 담낭의 병은 아닌지를 감별하려고 노력합니다. 상복부(특히 명치; 오목가슴)가 아프다고 하여, 모두 위장병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심장이나 폐에 질병이 있을때도 얼마든지 배가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손발이 붓거나, 숨이 찬다든지, 혹은 기침과 가래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어느 정도는 구별할 수 있습니다. 담낭염의 경우도 명치가 아플 수 있지만, 대개는 고열이나 황달을 동반하고, 갑자기 시작되는 점, 그리고 몇 가지 특징적인 진찰소견으로 대부분은 감별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위의 병이라는 생각이 들면, 다음에는 내시경이나 위투시와 같은 방법을 동원하여 위나 십이지장이 헐지는 않았는지(소화성궤양), 암덩어리는 없는지, 위나 식도에 염증이 심하지는 않은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만일 내시경이나 위투시로도 특별한 병변이 없다면, 그때야 비로소 ‘기능성 위장장애’라는 진단을 붙이게 되는 것이지요. 정리하면, 기능성 위장장애란 ‘모터의 성능이 좋지 않은 믹서’와 비슷한 것입니다. 디자인은 아주 훌륭한데, 믹서의 모터가 불량품이라면, 과일이나 채소를 효과적으로 잘게 부술 수가 없겠지요.

일단 기능성 위장장애라는 진단을 받게되면 스트레스 관리가 증상의 치료에 매우 중요합니다. 만성적 스트레스는 위장관의 기능을 직접적으로 저하시키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휴식과 운동, 즐거운 취미생활로 스트레스와 함께 위장의 무기력함을 날려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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