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버리는 것도 병 – 혹시 나도 저장 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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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도 바뀌고 해서 필자는 얼마 전 외투 정리를 하려고 장롱을 열었습니다. 평소에는 잘 신경 쓰지 않았던 장롱 구석 부위에 최근 몇 년간 거의 입지 않았던 옷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이사를 하면서 짐을 꽤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 입겠지 하는 마음으로 장롱 깊숙한 곳에 안 입는 옷들을 걸어 뒀던 것입니다. 저는 이 옷가지들을 의류 수거함에 내다 버리면서 문득 ‘아..나한테도 호더 (Hoarder; 저장 강박장애를 겪는 사람) 같은 모습이 어느 정도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저장 강박장애 (hoarding disorder, 수집광)란, 실제 가치와는 상관없이 물건을 과도하게 취득하고 그것들을 버리지 못해 생활 공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과적 질환으로 강박 관련 장애입니다.

출처 : 123RF 스톡 콘텐츠

저장 강박장애(수집광)는 전체 인구의 2~5% 정도로 추정되는 상당히 흔한 질환인데, 보통 11-15세 사이의 청소년기에 발병하여 만성적 그리고 지속적으로 일상생활에 불편을 초래하게 됩니다. 병인으로는 먼저 유전적 경향이 대두되는데, 호더의 80%에서 직계 가족 중 한 명이 비슷한 양상을 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대뇌 특정 구역에서 대사율이 떨어져 주의 집중 및 의사 결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질환의 특성을 조금 더 살펴보면, 호더들은 미래에 필요할 것이라며 물건들을 쌓아 두고, 소유하는 것에 지나친 중요성과 감정적 애착을 두는데, 대부분의 호더들은 이러한 행동을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수집의 대상이 되는 물건들은 주로 책, 편지, 신문, 헌 옷 등으로, 이들을 의도적이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조금씩 점차적으로 쌓아 두는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이런 잡동사니들 때문에 화재나 건물 붕괴가 생기고, 해충이 만연할 수 있기 때문에 본인과 주변 사람의 사망 위험성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집에서 쫓겨날 가능성도 높습니다. 또한, 많은 환자들은 물건을 버릴 결정을 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어떤 정보나 소유물을 기억해내는데 중요성을 부과하기도 합니다 (예: 오래된 신문을 버리면 영원히 그 정보를 찾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함). 따라서 정보를 잊어버리는 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여 문제 행동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수집가 혹은 컬렉터로 불리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그럴 만한 가치나 의미가 있는 물건들을 모으는 것이지, 이들이 모두 호더는 아닙니다. 그러면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저장 강박장애(수집광)로 진단되는 것인지 기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A. 실제 가치와는 상관없이 소지품을 버리거나 소지품과 분리되는 것을 지속적으로 어려워한다.
B. 이런 어려움은 소지품을 보관해야만 하는 인지적 필요나 이를 버리는 데 따르는 고통에 의해 생긴다.
C. 소지품을 버리기 어려워해서 결국 물품들이 모여 쌓이게 되고, 이는 소지품의 원래 용도를 심각하게 저해하여 생활을 어지럽히게 된다. 생활이 어지럽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족 구성원이나 청소부, 다른 권위자 등 제삼자의 개입이 있을 경우뿐이다.
D. 수집광 증상은 (자신과 타인을 위한 안전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을 포함하여) 사회적, 직업적, 또는 다른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임상적으로 현저한 고통이나 손상을 초래한다.
E. 수집광 증상은 뇌손상이나 뇌혈관 질환, 프래더-윌리 증후군과 같은 다른 의학적 상태로 인한 것이 아니다.
F. 수집광 증상은 다른 정신질환으로 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예, 강박장애의 강박 사고, 주요우울장애의 감소된 에너지, 조현병이나 다른 정신병적 자애에서의 망상, 주요신경인지장애에서의 인지 능력 결함, 자폐스펙트럼장애에서의 제한된 흥미).

컬렉터가 모두 호더인 것은 아닙니다. (출처 : 플리커 by jvoves Untitled)

저장 강박장애(수집광)는 치료하기가 어려운 질환입니다. 강박 관련 장애이기 때문에 보통의 강박장애와 치료가 비슷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소수의 환자만이 강박장애에서 효과적인 치료 약물이나 인지 행동치료에 반응합니다.

저장 강박을 보이는 환자의 치료에 대한 낮은 동기 및 저항이 주된 원인입니다. 그럼에도 가장 좋은 치료 방법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인지 행동 모델입니다. 환자가 스스로 의사 결정을 내리고 물품을 분류하는 것을 훈련할 수 있게 하고, 물품을 버리는 것에 노출시키고 습관화 시키면서, 인지 재구성을 이끌어 내는 과정입니다.

약물 치료로 세로토닌 계열 항우울제를 사용하는 것이 어떤 연구에서는 효과적이라고 하나 다른 연구에서는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등 아직 논란 중입니다. 치료의 목표는 집에 쌓아 놓은 물품들을 유의미한 수준으로 제거하여 삶의 공간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주변인들의 신고로 주민센터와 경찰 지구대 등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호더들의 주거환경을 정비 및 개선하는 사례들이 생겨나고 있는 만큼, 이번 칼럼을 통하여 좀 더 많은 관심이 기울여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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