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라는 말은 제가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낯선 단어 입니다. 헬스케어라는 말 자체는 우리의 건강문제를 다루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말이겠지만,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단어였고, 거기에 이노베이션이라는 말이 또 붙게 되니 더더욱 궁금증이 생겨나 ‘이책은 또 무슨 책인가…’ 하면서 책을 넘겨 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저자의 이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최윤섭씨는 상당히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인데, 컴퓨터 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전공하고, 전산생물학 박사학위가 있으며, 의과대학 암 연구소에서 연구 조교수로 재직하였고 국내 유일의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하는 등 상당히 인상적인 경력을 갖고 있는 분인게 틀림없었습니다. 사실, 제목과 저자 이력만 보고는 ‘의사도 아닌 사람이 헬스케어에 대해 논한단 말인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과 오만한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었는데, 책을 읽어 가면서 얼마나 그러한 생각이 모자랐는지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건강문제를 다루는 모든 작업이라 할수 있는 헬스케어 분야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하면 될 듯 합니다.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잠깐 소개하면…
<유전자 분석 기술의 발전>
휴먼 게놈 프로젝트 이후 유전자 분석 기술은 나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최근 미국의 23andMe라는 회사 등 혁신적인 기업에서는 과거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개인의 유전자 분석을 아주 저렴한(?)가격으로 제공하기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99달러를 내면, 자신의 인종의 뿌리가 어느 조상으로 부터 왔는지, 대머리가 될 가능성, 그리고 알콜을 견뎌낼수 있는 인자가 얼마나 있는지, 각종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 등을 분석해서 보고해 준다고 합니다. 물론, 현재는 이러한 분석의 정확성과 안정성에 관한 논의로 인해 한국의 식약청과 같은 미국의 FDA에서 승인을 해주지 않아 질병 발생 가능성에 대한 예측 서비스는 중단한 상태라고 합니다만, 미래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러한 발전이 현재에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직은 비용과 시간의 문제로 인해 유전자 전체 서열을 분석하기 보다는 SNP(single nucleotide polymorphsim) 한국말로는 단일 염기 다형성이라는 즉, 아주 일부분의 유전자 서열만을 따와서 분석하는 서비스로만 제공할수 밖에 없고, 업체마다 각 질환을 예측할때 사용하는 SNP가 달라 표준화가 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동일한 사람이 여러 업체에 맡겼을 때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문제 등의 한계점이 있는 것은 사실 이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조금씩 해결될 것이고 이로 인해 암치료 등에서의 혁신적인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허황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변화하는 시대에 의사들은 질환 중심의 연구 뿐만 아니라, 분석된 유전자 정보를 해석할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만 앞으로의 진료에서 진정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슈퍼컴퓨터의 활약>
IBM의 슈퍼컴퓨터 ‘윌슨’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예전에 퀴즈 챔피언들과의 대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둔적이 있었던 윌슨이 지금은 미국의 대형 병원 암센터와 손을 잡고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컴퓨터에 대해서는 저도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지만 컴퓨터는 2진법에 근거한 컴퓨터 언어만을 인식하는데 윌슨은 퀴즈 대결을 할 수 있었던 것만 봐도 알수 있듯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용어들 즉, 자연어를 인식하고 해석할수 있는 능력이 있는 컴퓨터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윌슨에게 암의 진단에서 치료에 까지 현재까지 나와있는 모든 연구 결과들, 그리고 환자의 데이터를 가르쳐 주어 특정 환자의 증상, 검사결과 등을 입력하면, 이러한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를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추출해 내줄수 있다고 합니다. 암 센터의 여러 의사들의 진단이나 치료에 대한 결정과 윌슨의 decision을 비교하면, 이미 약 80퍼센트 이상의 일치율을 보이고 있다고 하니 그 발전이 실로 놀랍습니다. 물론, 암치료라는 것이 데이터 만으로 적용시킬수 있는 문제가 있으며, 한가지 암에 대한 치료법을 10명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할 경우 전문가마다 모두 다른 치료법을 제시할 정도로 암치료라는 간단하고 단순하게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한계가 있지만, 치료법의 결정에 있어 의사의 선입견을 배제하고 또한 최신 지식을 모두 다 습득할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는데에는 이러한 슈퍼컴퓨터의 등장이 새로운 길을 제시해줄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
구글, 애플, 삼성 등에서 헬스케어 플랫폼 개발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저는 이 분야에 대해 아는 바가 많이 없지만, 얼마전부터 계속 논의 되고 있는 이른바 ‘원격진료’에 대한 이야기도 이러한 흐름의 하나일 것입니다. 아무튼 IT기술과 헬스케어 분야의 접목은 이제 시대의 큰 흐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스마트폰을 이용한 심전도 측정계가 FDA의 승인을 받아 시판중이며, 구글의 구글글래스는 의사들이 수술방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글글래스를 통해 수술장면을 수술자 시점으로 녹화하거나 영상을 전송하여 교육용으로 사용하거나, 수술도중 환자의 검사결과나, CT, MRI 영상을 모니터링 하며 수술하고, 진료실에서는 컴퓨터 화면만 보면서 진료할수 밖에 없던 과거와 현재의 진료 행태에서 환자의 얼굴을 보면서도 기록을 하고 자료를 찾아 볼수 있는 환자중심적인 진료의 모습으로 변모할 가능성을 구글 글래스는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사생활보호에 대한 문제가 계속적으로 언급되고 있고, 배터리 용량이나, 구글글래스에 연동해서 사용할 수 있는 어플의 부재등으로 구글글래스 프로젝트 자체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지만, 실제로 미국의 대학병원에서는 정식으로 구글글래스를 의료장비로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는 등 이러한 디지털 디바이스는 이미 우리 곁에서 헬스케어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의사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평소에 지나치게 고민이 많은 저로써는 이러한 헬스케어 이노베이션의 시대가 의사 존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은 의사들에게도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고 준비할 시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디지털 헬스케어는 한계가 뚜렷해 보이고 FDA 승인등의 규제를 뚫어야 하는 문제들도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거대한 변화의 흐름은 이미 시작되었고, 거스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유전자 분석’의 시대에 의사들은 유전자 분석결과를 해석할 줄 알아야 할 것이며, ‘슈퍼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환자의 심리적인 문제나 환자 치료에 있어서 보다 ‘인간적인’ 접근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할것 같습니다. 또한 이제 ‘디지털 헬스케어’의 시대의 도래로 개개인이 건강문제를 스스로 모니터링하는 시대가 온다면, 이러한 데이터를 환자들에게 어떻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에 대해 준비하고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헬스케어 변모의 시대가 거대 기업을 통해 이뤄지고 있고,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윤추구일 것이며, 의사들이 이러한 시대에 대처하고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의사들 스스로의 자본력이 없으면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고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요즘에 간간히 나오는 의료정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이미 이러한 흐름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막연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 의사들은, 아니 ‘나’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지…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흐름이 ‘기술자’와 ‘기업가’의 일이라고 옆에서 지켜보는데서 그치지 말고 이런 변화의 모습들을 추적 관찰하고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할 때인것 같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우연히 만난 책이지만, 많은 도전과 숙제를 안겨준 책인 것 같습니다. 얼리어답터 뿐 아니라 저같이 배경지식이 없는 의사들도 한번 쯤은 읽어 보고 다가올 내일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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