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이라 무척 바쁘거든요… 약 좀 독한 걸로 지어주시고 주사도 두방 놔주시면 안될까요…”
“… 감기몸살로 온몸이 쑤시지만 약은 안먹을래요. 감기야 고춧가루 푼 콩나물국 한대접이면 그만 아닌가요?…”
똑같은 감기라도 약에 대한 생각은 이렇게 차이가 나곤 합니다. 도대체 약은 언제 어떻게 먹어야 진짜 약이 될까요?
세균과 바이러스???
우리 몸에 감염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은 크게 세균(박테리아)과 바이러스로 구분합니다. 대장균이나 포도상구균 등 세균성 질환은 항생제로 비교적 쉽게 치료되지만, 감기나 홍역같은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특별한 치료제가 없습니다. 다행히도 바이러스성 질환은 대부분 자연치유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에이즈처럼 치명적인 바이러스질환은 예외이지만요….. 문제는 바이러스와 세균이 비슷한 증세를 일으키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목이 붓고 아프면 흔히 (바이러스가 원인인) 목감기라고 생각하지만, 세균성 편도선염인 경우에는 반드시 항생제 치료가 필요합니다. 기침과 가래가 오래가는 경우에는 반드시 세균성 폐렴을 의심해야합니다. 기억해야 할 한가지 사실은, 바이러스성 질환은 특별한 치료제가 없지만, 세균성 질환은 반드시 항생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그 많은 감기약들은 다 뭔가요?
감기나 홍역, 풍진과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들은 대부분 1-2 주를 고비로 저절로 호전됩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약이 필요없는 병인 셈이지요. 하지만, 호전반응이 오기까지는 고열이나 몸살, 콧물, 기침, 가래, 발진 등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따라서 해열제나 진해제, 진통제 등을 적절히 사용하면 훨씬 수월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고, 대부분의 감기약들은 이러한 성분들이 혼합된 것입니다. 영국이나 캐나다같은 나라에서 감기로 의사를 찾아가면, 약도 주지않고 그저 푹 쉬고 물 많이 먹으라는 말만 듣게 된다고 불평하시는 교포들이 많습니다. 약도 한보따리주고 주사도 놔주는 한국이 그립다고들 하십니다. 의학적인 원칙으로는 외국의사들이 맞을지 모르지만, 환자 개인으로 볼때는 한국의사들이 훨씬 편리한 셈이지요. 문제는 항생제인데, 한국의사들이 감기에 불필요한 항생제를 많이 처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만, 감기와 비슷한 세균성질환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조건 비난만 할 일도 아닙니다. 덕분에 ‘항생제 내성율 세계 최고’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부작용이 생기긴 했지만요…
안 아픈데도 약을 먹어야 한다구요?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어야 하는 병들은 별로 아프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같은 만성 질환들은 합병증이 생기기 전까지는 별다른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니… 얼핏 이해가 가지 않으시죠? 이런 병들을 단번에 완치시키는 치료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길어야 하루정도 혈압이 떨어지고, 당과 콜레스테롤 농도가 정상화되는 약들 뿐인데, 이것이 바로 이런 약들을 열심히 평생토록 복용하셔야 하는 이유입니다. 약을 안드시면 심장병, 중풍같은 각종 합병증을 만나게 될 확률이 높은데, 약을 드시는 동안은 이러한 위험성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혈압이나 당뇨약을 잘 안 드시는 노인들 중에서, 관절염약이나 두통약은 늘 달고 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혈압이나 당뇨에 비하여 관절염이나 두통이 훨씬 더 아프고 성가시기 때문입니다. 진짜 약을 잘 먹는 비결은 아프지 않은 병들에 대하여 꼬박꼬박 챙겨서 드시는 것입니다.
약도 없는 병이라구요….?
몸이 아픈데 약이 없다면…? 무시무시한 선언으로 들리시겠지만, 실은 다음 두 가지 경우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불치병이거나 아니면 약이 필요없이 저절로 좋아지는 병이란 뜻이겠지요. 감기를 비롯한 바이러스성 질환은 아직 치료제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