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도 병? – 심인성 통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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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이 속담이 의미하는 바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남이 잘 되는 것을 기뻐해 주지는 않고 오히려 질투하고 시기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질투’와 ‘시기’라는 심리적, 정신적 갈등이 ‘배가 아프다’라는 통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선조들도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통 ‘신경성’이라고 부르는 심리적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 증상은 의사에게 신체 진찰 및 검사를 받아도 특별한 이상 소견이 나오지 않습니다. 분명히 나는 어딘가 아프고 불편한데 몸에 이상이 없다고 하니 참으로 답답하고 때로는 꾀병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까지 해서 억울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기질적 원인이 없는 신체 증상들은 정신신체의학이라는 정신건강의학의 한 분야로서 다뤄져야 하는데, 아직 우리에게 이 분야가 조금은 생소할 수 있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 조금이나마 소개하고자 하고, 여러 신체 증상 중 ‘통증’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심리적, 정신적 갈등 요인으로 인해서 통증이 발생하는 경우는 나이나 성별에 따라서 특별한 차이 없이 우리 주변에서 굉장히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심인성 통증의 원인 중 한 가지로 정신역동적 요인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정신역동이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과거의 경험 및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다는 이론인데, 정신 내적 갈등을 신체를 통하여 통증이라는 상징적인 형태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감정적인 통증은 합법적이지 않다고 무의식적으로 간주하여 이를 신체화 함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합법적으로 얻고자 할 때 심인성 통증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사촌이 땅을 샀다고 속이 상하는 모습은 합법적이지 않다고 무의식이 판단하여 배가 아프다는 상징적인 형태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무의식은 타인에게서 사랑을 받고자 (예: 엄마 앞에서만 다리가 아프다며 업어 달라고 하는 아기), 때로는 잘못된 행동에 대한 속죄를 하고자 (예: 숙제를 안 했을 때 머리가 아픈 학생), 또는 억압된 공격성을 표출하는 방편 (예: 경쟁자가 잘 돼서 배알이 꼴린 경우) 등으로 신체 증상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생물학적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중추신경계에서 세로토닌, 엔도르핀 등의 불균형이 생기고, 이로 인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던 통증 전달의 억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뇌가 통증을 인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경 물질들의 불균형이 생기면 자율신경계도 항진되어 통증의 발생뿐만 아니라, 맥박이 빨라지고 땀이 많이 나게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발생하는 심인성 통증 등 신체 증상은 사람마다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실제로 어떤 경우에는 내과적, 외과적 신체 질환과 유사한 증상들을 보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일반 동네 병의원을 자주 찾게 됩니다.

하지만 심리적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진통제나 제산제 등 잠시 증상만 경감시켜주는 대증적 치료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 효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통증은 지속될 것이고, 이에 환자는 약물 변경 혹은 용량 증량을 요구하기도 하고 치료에 대해 불만이 쌓이기도 할 것입니다.

때로는 신체 증상에 너무 몰입하여 과도한 불안으로 인해 의사나 병원을 옮겨 다니는 ‘닥터 쇼핑’을 하면서 본인의 건강을 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듯 기질적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신체 증상이 하나 이상 있고, 그 신체 증상이나 건강 문제에 관하여 과도하게 생각하거나 걱정하여 일상생활에까지 지장이 가는 수준이라면 ‘신체증상 장애’라는 질환으로도 진단이 가능합니다.

이 질환은 60-100%에서 우울 증상을 보이고, 25-50%의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동반 진단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원인이 불명확한 신체 증상이 지속되고 대증적 치료로 증상이 잘 경감되지 않는 사람들은 신체증상 장애 및 우울증 까지도 의심해봐야 합니다.

물론 비특이적인 신체 증상이 지속된다고 모두 심인성 통증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우선 철저한 신체 진찰 및 검사 등을 통하여 기질적 원인이 배제가 되어야 심인성 증상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고, 일단 심인성 통증으로 판단된다면 이에 대해서 약물 치료와 정신 치료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약물 중 진통제는 대개 도움이 안되며 오히려 약물 중독의 위험이 있으니 지양해야 하고, 증상의 생물학적 원인을 감안할 때 항우울제 혹은 항경련제가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신경안정제 등 항불안제가 증상의 경감시켜줄 수도 있으나 항상 오남용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 다른 치료법으로는 정신 치료가 있는데, 치료자와의 충분한 면담 및 인지 요법 등으로 통증의 감정적인 측면에 대한 접근을 통하여 증상이 경감 및 해소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설 명절이 있었습니다. 가족 친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한편, 장거리 이동, 먹을 거리 준비, 가족 간의 다툼 등으로 심신이 지치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명절을 전후해서 상당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고 나서 ‘명절 증후군’에 빠진 분들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소화가 잘 안되거나, 온몸이 쑤시듯이 아픈 경우도 있을 것이고, 기운이 없고, 잠을 잘 못 자고, 감정 컨트롤이 잘 안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명절뿐만 아니라 하루하루가 고된 일상생활 속에서도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신체 증상 혹은 심인성 통증, 우울 증상일 것입니다. 이러한 증상들은 단순히 한 번 왔다 지나가는, 누구나 겪고 있으니 특별하지 않은 증상들이 아니고 신체증상장애나 우울증의 한 모습일 수도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말고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 병의원을 찾아 상담을 받아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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