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시원한 바다로 떠나는 사람이 증가하는 계절 여름입니다. 누구나 즐겁고 안전한 바다 여행이 되기를 기원하지만, 여름철 해마다 해안가에서 안타까운 사건과 사고가 발생하곤 합니다. 단순한 사고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큰 질병과 사건까지 실로 다양합니다.
질병 측면에서 보면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무서운 병이 있습니다. 바로 오염된 바닷물에 상처 난 피부가 닿았거나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으면 걸리는 비브리오 패혈균에 의한 감염병이 그것입니다.
오늘은 비브리오 패혈균에 의한 감염증을 알아보겠습니다. 특히 가장 심한 형태인 비브리오 패혈증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비브리오 패혈증이란?
비브리오 패혈증은 비브리오 패혈균(Vibrio vulnificus)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패혈증을 말합니다. 패혈증(Sepsis)은 감염 등에 의한 심각한 염증 반응이 전신에 나타난 상태로 사망률이 매우 높은 질병을 말합니다. 이전 패혈증 설명글을 참조하길 바랍니다.
비브리오 패혈증의 원인과 역학
비브리오 패혈균(Vibrio vulnificus)이 주된 원인균입니다.
비브리오 패혈균은 그람음성 알균으로 짧은 막대 모양 등 여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열대, 아열대 기후 바닷물(수온 9℃~31℃)과 해안가에서 잘 서식합니다. 수온이 약 18℃ 이상이고 염분이 15~25 천분율(ppt)인 곳에서 개체 수가 확실히 증가하므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여름철에 해안가 주변에서 비브리오 패혈균에 의한 감염 환자가 발생합니다.
비브리오 패혈균이 굴, 홍합, 가리비, 대합 등의 조개류에 증식하고 있다가 인간이 이를 날것으로 먹으면 비브리오 패혈균에 의한 감염에 걸릴 수 있습니다. 특히 만성 간 질환자, 면역저하자, 만성질환자(당뇨병, 만성신부전증 등)가 비브리오 패혈균이 감염된 어패류를 날것으로 먹었다면 비브리오 패혈증에 걸릴 가능성이 매우 커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제3군 법정 감염병에 속해 있습니다.
비브리오 패혈균 감염의 형태
비브리오 패혈균에 의한 감염은 크게 3가지 임상 형태로 나타납니다. 위장염, 패혈증, 피부 연부조직 감염증이 바로 그것입니다. 위장염과 패혈증은 섭취 형태로 발생하고 피부 연부조직 감염증은 비브리오 패혈균에 오염된 바닷물에 상처 난 피부가 접촉해서 생길 수 있습니다.
드물지만 뇌 수막염, 폐렴, 자발성 세균성 복막염, 자궁내막염, 골수염, 패혈성 관절염 등의 감염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패혈증 형태로 증상이 나타나면 약 50%~65% 이상의 높은 사망률을 보입니다.
증상
비브리오 패혈균에 의해 발생하는 패혈증 증상은 초기에는 식중독과 비슷합니다. 갑작스럽게 발열, 오한이 나타나며 울렁거림, 구토, 설사 등의 위장 증상이 나타납니다. 감염이 진행되면 특징적인 증상이 나타납니다. 바로 피부에 물집, 반상출혈, 반점, 부종, 멍 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로 양쪽 다리에 특징적으로 나타납니다.
더 진행하면 피부나 근육이 괴사(썩어들어감)합니다. 점차 악화하면 패혈성 쇼크가 발생합니다. 의식 상태가 처지며 판단력, 기억력, 주의력이 없어지고 파종성 혈관 내 응고(DIC)가 일어나 생명이 위독하게 됩니다.
진단 및 검사
일차적으로는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과 역학을 고려해서 비브리오 패혈증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이후 혈액에서 균 배양검사를 통해 비브리오 패혈균의 존재를 확인하면 진단할 수 있습니다.
여름철에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은 사람이 갑작스럽게 발열이 있고 피부 물집이 있으면서 기존에 간 질환이나 알코올 중독 같은 병력이 있다면 비브리오 패혈증을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검사는 혈액검사가 우선입니다. 심한 염증 소견과 세균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혈청 크레아티닌(Creatinine, Cr) 상승도 흔합니다. 근육 손상 지표인 크레아틴 키나아제(Creatine Kinase, CK)의 상승도 종종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균 배양검사는 필수입니다. 혈액, 물집, 고름, 대변으로부터 채취한 검채를 통해 균을 배양해서 비브리오 패혈균을 확인하면 확진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비브리오 패혈균의 특이 유전자를 확인하는 실시간 중합효소연쇄반응(Real-time PCR) 검사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영상 의학 검사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초음파, 전산화 단층촬영(CT), 자기공명 영상(MRI) 같은 검사입니다. 연부 조직의 물집이나 병변을 확인할 수 있고 다른 진단에 해당하는 병변인지를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치료
가장 근본적인 치료는 바로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원인균인 비브리오 패혈균을 사멸시켜야 합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비브리오 패혈균 감염으로 24시간 이내에 항생제가 투여되면 33%의 사망률을 보이고, 48시간 이내이면 53%의 사망률을 보입니다. 72시간 이후에 항생제가 투여되거나 아예 항생제가 투여되지 않으면 100%의 사망률을 보였습니다.
즉, 신속한 항생제 투여가 치료 결과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효과가 있는 항생제는 3세대 세팔로스포린, 베타락탐-베타락탐 분해효소 억제제 복합체, 카바페넴, 테트라사이클린, 아미노글리코사이드, 플루오르퀴놀론, 트리메토프림-설파메톡사졸, 클로람페니콜 등입니다.
항생제도 중요하지만 피부나 근육에 괴사가 있다면 배농, 절개, 절제 등의 수술적 처치를 동시에 시행해야 합니다. 괴사하여 썩은 조직을 수술로 제거하는 것은 세균 자체의 양을 줄일 수 있고 감염이 퍼지는 정도나 세균이 유입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예방과 관리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비브리오 패혈증에 걸리지 않도록 사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만성 간 질환자, 면역저하자, 만성질환자(당뇨병, 만성신부전증 등)는 어패류나 해산물의 생식을 피해야 합니다. 여름철에 어패류는 5℃ 이하의 저온 저장을 하고 먹을 때는 56~85℃ 이상으로 가열하는 게 좋습니다. 해산물을 다룰 때는 장갑을 착용하는 것이 좋고 당연히 어패류를 요리한 칼이나 도마는 소독 같은 위생에 신경 써야 합니다.
피부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비브리오 패혈균에 오염되어 있는 바닷물과 접촉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상처 난 피부에 바닷물이 노출되었다면 즉시 깨끗한 물로 상처 부위를 씻고 소독해야 합니다.
비브리오 패혈균은 사람 간에는 전파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환자나 환자와 접촉한 사람을 굳이 격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환경 소독이나 검역은 필요 없습니다.
이상으로 비브리오 패혈증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비브리오 패혈증은 사망률이 매우 높아 위험한 질병입니다. 조기 진단과 신속한 항생제 투여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여름철에 어패류를 날것으로 먹은 뒤 발생하는 발열, 오한, 설사, 복통 등의 증상을 식중독으로 간과하고 가볍게 넘기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반드시 병원에 방문하셔서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해안 바닷물에서 비브리오 패혈균이 검출됐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또 비브리오 패혈증을 진단받고 치료 후 회복 중인 올해 첫 환자도 나왔다고 합니다. 올해는 비브리오 패혈증으로 사망에 이르는 분이 더 이상 없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